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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한줄평 게임에서 선택지 하나 누를 뿐인데 울고 고민하며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힘. 

구매 http://store.steampowered.com/app/319630/Life_is_Strange__Episode_1/

한글패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ibme0325&logNo=220624344482


게임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스팀 중독자가 되어 차례차례 게임을 사들이고 그것을 열심히 깨면서 순조롭게 게임 폐인의 길로 향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게임의 유저 한글화에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 시장에 불법복제도 판을 치니 정식 한글판 게임이 흔하지 않은 것이 슬픈 현실인데, 그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어 한글화에 힘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동시에 착잡해지는 마음...


아무튼 Life is Strange도 그런 노력의 산물로 에피소드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풀 패키지의 통합 한글 패치를 받아 이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패치를 올리신 분의 코멘트에 따르면 90% 가량 한글화 되어 있다고 함. 직접 플레이해 보니 주인공의 일기(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부분만 번역이 안 되어 있었다.


이 게임은 큰 스토리라인을 따라 가면서 그 안에서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과 사물에 대해 선택지가 제공되고, 선택지를 골라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여기서 다소 특이한 점은 주인공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어 이미 선택을 마친 상황을 되돌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형 게임에서 유저들이 흔히 쓰는 save&load 방식 플레이를 인게임에서 합법적(?)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됨.


게임은 맨 처음 주인공 맥스가 만나는 환영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 환영과 함께 맥스는 자신에게 갑자기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능력을 활용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막거나 진행을 바꾸어 가며 자신이 본 환영이 왜 일어나는지, 또한 마을에서 어느날 갑자기 실종된 소녀 '레이첼 앰버'는 어디로 간 것인지에 대해 조사해 나가게 된다.


맥스는 어린 시절 갑자기 가족과 함께 고향인 아카디아 만을 떠났다가 5년 만에 혼자 돌아와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상태인데,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은 직후 학교에서 그녀의 소꿉친구인 '클로이'를 만난다.

클로이는 맥스가 떠나기 직전에 사고로 부친을 잃었고, 직후 맥스마저 도시를 떠나 버리자 슬픔과 상실감으로 비뚤어지게 된다. 이 어두운 시기에 만난 친구가 레이첼이었고 그녀와 깊은 유대를 형성한 상태였는데 어느날 그녀마저 말 없이 실종되어 버리자 레이첼을 찾는 일에 완전히 몰두한 채 상당히 망가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트러블에 휘말린 상태였던 클로이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게 된 것을 본 맥스가 시간을 되돌려 그녀를 살리고, 맥스는 다시 만난 클로이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털어놓은 뒤 둘이 같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과 레이첼의 실종, 아카디아 만에 곧 일어날 심각한 자연재해에 대해 조사하기로 한다.


클로이는 맥스의 단짝이고 게임 내에서 계속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맥스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데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게임 몰입에 실패하는 바람에 결말을 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서술했다시피 클로이는 비뚤어진 아이인데 이 비뚤어진 정도가 꽤나 심하다. 학교에서도 계속 문제를 일으켜 퇴학당했고 새아빠와는 최악의 관계이며 집에서도 대마를 피우는 문제아이다. 성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충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며 피해 의식도 상당하다. 이런 성격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내내 맥스를 휘두르거나 돌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것도 맥스를 끌어들인 채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친구와 단짝이라면 서서히 멀어지는 방법을 생각해 내느라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 그런 인물.


맥스는 대조적으로 한국인의 취향에 딱 맞는 얌전하고 말 잘 듣는 내향적 범생이인데 이런 캐릭터를 플레이하면서 클로이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건 나에게는 무리였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보낸 지가 몇 년인데 이제 와서 이런 위험한 친구에게 끌리지도 않거니와 이런 막장스러운 일탈에 대한 로망도 딱히 없으니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를 않는 거다. 맥스는 절친이라고 계속 클로이랑 다니는데 나는 왠지 부모의 마음이 되어 이런 친구랑은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다고 뇌까리고 있는 모습이 연출되어 버리는 것.


그래도 맥스가 좋다니 어쩌겠나. 같이 다니는 동안 클로이는 계속 황당한 이유로 위험에 빠지거나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맥스인 나는 계속 시간을 되돌려 가며 클로이를 구해주러 다닌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플레이어는 그렇게 힘들게 살려놓은 클로이의 목숨을 두고 궁극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클로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소한 것들을 포기하면 됐다. 문제가 생긴다 해도 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려 재도전할 수 있었고,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아프거나 코피가 흐르거나 기절하거나 심지어는 맥스 자신의 목숨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인데 내가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할 만 하지 하는 생각으로 기꺼이 희생하며 플레이해 왔다.

그런데 이제 플레이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클로이의 목숨, 아니면 '세계'다.


나는 클로이에게 별 애정이 없었음에도 '그래도 지금까지 클로이를 살려놓느라 이 고생을 했는데 그냥 마지막까지 클로이를 선택하고 세계 따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으니 클로이와 충분한 유대감을 형성한 유저라면 정말로 트라우마가 남을 만한 순간이었으리라. '세계'를 선택하는 것은 지금까지 플레이하며 겪은 모든 사건들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었기에 이 선택에 대한 상실감은 더욱 컸다. 그리고 게임은 말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시간을 되돌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부질 없었던 것이다. 어딘가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당장 그 부작용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쌓이다가 도드라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큰 스토리라인을 봐도 그렇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소소한 이벤트들에도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다.

한 캐릭터는 맥스가 볼 때마다 소소한 사고를 당한다. 버스가 지나가면서 튀긴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거나, 가만히 서 있다가 누가 던진 공에 맞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시간을 되돌려 그 캐릭터에게 경고해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경고해줄 때마다 '이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메시지가 나오는데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이 캐릭터가 나중에 맥스가 시간을 되돌리거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장치로 작용하려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반부에 그 캐릭터가 생명의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하고 도와주려 다가갔더니 '지금까지 네가 나타날 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저리 가!'라고 말하며 내 도움을 거절하려 물러서다 사고로 죽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불편과 망신을 막아주려는 사소한 배려로 선택했던 경고들이 정작 위험한 순간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그 이벤트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뭐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염세적인 게임이 다 있나 싶지만 그 안에서도 정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있다. 게임이 시작할 때부터 미스터리로 제시되었던 레이첼 앰버의 실종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잡아넣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맥스의 능력을 통해 만들어진 시간이 왜곡된 세계에서도, 맥스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 전개되는 선택 후의 세계에서도 해결되는 단 하나의 희망적인 사건이다. 이마저도 없었으면 이 게임은 '인생은 요지경'이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인생은 부질없다'는 주제를 전하며 끝나 버렸을 것이다.


인생은 이상하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추측과 희망에 기대어 여러 가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것을 엿보고 바꿀 수 있게 된다면 당장은 신이 된 것 같겠지만 이 또한 결국은 또 하나의 선택지이다. '능력을 써서 미래를 바꿀 것인가, 바꾸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능력에 대한 선택도 내가 감수해야 할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세상의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독 안의 쥐이다.

누구나 꿈꿔볼 만한 능력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로써 이 게임의 주제의식은 꽤나 깊이가 있다. 꼭 지켜주고 싶은 친구와 세계를 저울질하는 것은 한 꺼풀 벗겨 보면 그 모든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인지,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가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생각할 거리가 많고 보람차기도 한 게임이었다. 스핀오프 시리즈가 하나 더 나와 있어 조만간 구매해 보려고 한다. 본편에서는 사진으로만 등장한 레이첼 앰버가 나와 불꽃같은 플러팅을 펼친다는 리뷰가 있던데 누가 썼는지 기대감 조성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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