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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코코 (Coco)

Cab 2018. 2. 4. 01:12

점수 ★★★

한줄평 플레이팅에 몰빵한 밥상 위에 놓인 다양한 맛과 종류의 음식들.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으나 플롯, 일부 장면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있습니다.


감동적인 영화의 경우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감동의 늪에서 허우적대기 바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 기분에서 벗어나 영화에 대해 생각해 보려면 스스로 진지해지는 쿨타임이 좀 필요하다.

코코를 보고 난 직후에도 최대한 빨리 눈물을 말려야 영화관을 나서면서 덜 부끄러울 텐데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고 집에 온 뒤에 차를 한 잔 말아놓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야 겨우 머리가 식으면서 이런저런 할 얘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덕에 최소한 한 페이지 정도 쓸 말은 생겼다.


코코는 말하자면 플레이팅에 몰빵한 밥상 같은 거였다. 개봉하기 한참 전에 이미 아트북이 나오고 디자인이 아름답기로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보는 내내 탄성을 내뱉게 되는 멋진 화면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형광색을 퍼부어 놓고 안 촌스럽기 미션을 훌륭하게 달성한 디자이너들에게 건배.


하지만 스토리나 배경 세팅 부분으로 넘어가면 머리가 싸늘하게 식기 시작하는 것이, 일단 사자의 세계가 너무 현대 서양풍이다. 출입국 심사대, 기차역, 파티에 참석하는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의 귀빈들을 위한 레드카펫.

말하자면 멕시코 풍으로 꾸며진 할리우드 느낌이었다. 파티 씬으로 가면 파티장 중앙에 장식용으로 꾸며진 수영장과 파티를 지배하는 호스트의 풍채 당당한 모습이 나오는데 이걸 분명 어디서 봤는데 싶더라니 위대한 개츠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광경일 때, 혹은 사자들의 세계에 기차역이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기차역의 모습이 19세기 패딩턴 스테이션과 똑같이 생겼을 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보다 보면 '멕시코는 이용당한 것이다'라는 문구가 뇌리를 상당히 세게 때리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찬물을 맞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멕시코 전통 문양을 여기저기 새겨 놓는다든가 캐릭터들 복장이 전통적이라든가 하는 걸로 얄팍하게 수습하기에는 너무 먼 데까지 와버린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세계가 대부분 서구화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 말자. 얘기했잖아. 개츠비랑 빅토리안 런던이 같이 있다니까.


이렇게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을 조합하는 방식'은 스토리에서도 드러나는데, 이게 아동용이라서라거나 클리셰라는 말로 얼버무리기에도 무리가 있는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인 게 좀 문제였다.

스토리를 관통하는 주제인 '가족 간의 화합과 애정'은 괜찮다. 주인공 미구엘이 역경을 딛고 재능을 떨치는 전형적인 성장 서사도 좋다. 권선징악? 아동용인데 당연하지!

그런데 여기에 나만의 특별한 친구라든가 악당에게 부여된 스토리와 반전, 출생의 비밀 등등 여기저기서 많이 본 것들이 이것저것 끼얹어지기 시작한다.

'으음, 꽤나 뻔하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관객의 앞에 악당이 몰락하는 장면의 연출까지 더해지면 이제는 사람이 냉정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지적이고 분석적인 관객이 아니라서 영화를 보는 중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울라고 하면 운다. 그렇게 보기에는 괜찮은 애니메이션이었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까지는 아 좋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세 시간쯤 지나 이 리뷰를 쓰는 동안 다시 돌아온 이성이 이 애니메이션을 갈갈이 찢어놓고 있는 것을 말릴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멕시코의 사자의 날'이라는 배경은 새로운데 그 외에는 새로운 게 없고, 음악과 장식을 걷어내고 나면 여기가 멕시코라기에도 찜찜하다. 문화적인 배경을 열심히 반영해 놓기는 했는데 표면적인 부분만 그렇게 포장해 두었다는 느낌이 나서 곱씹을수록 뒷맛이 좋지는 않은 영화였다.

그래도 주제의식은 잘 구현되어 있고 색감과 음악이 매우 좋아서 영화 자체는 집중력 있게 볼 수 있다. 한 번쯤은 봐도 좋지 않을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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