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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양이나 동물을 키워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 지금 쟤가 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하는 소설의 설정에 고양이 캔따개로 살고 있는 입장에서 후련한 기쁨을 느껴볼 새도 없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눈물로 만난 두 생명의 이야기는 자갈길 위를 굴러가는 나무 수레처럼 힘겹게 나아간다.


소설의 주인공인 고양이 '나'와 여자 '밍'은 사회적 약자로서, 손쉬운 혐오의 대상으로서 서로 많이 닮아 있다. 있는 힘껏 위험을 피해 달리고 숨어 가며 겨우겨우 살다가도 운이 나쁜 어느 날, 조금 방심한 어떤 순간에 그 연약한 생명이 정체 모를 우악스러운 손길에 그대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렇게 서로 닮은 존재들이기에, 피 흘리며 죽어가던 '나'를 구한 순간 '밍'은 그저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한 것이 아니라 '나', 즉 자기 자신을 구하기도 한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게 된 후 농담을 약간 섞은 진담으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돌봐 줘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사실 여성으로서의 삶은 너무나 팍팍하고 막막해서 날이 갈수록 내가 잘 살려고 사는 건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지는 시간들을 그저 견디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삶에서 마주치는 지나치게 많은 부조리에 매일 정신이 정 맞은 돌처럼 깎여 나가고 깨진 부분이 스스로를 찌른다. 굳이 왜 살아 있는가 싶은 그런 순간들에 나는 내 고양이를 생각한다. 내가 직접 선택하여 나에게 책임지운 생명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나에게 삶의 이유를 제시하고 좌절에 매몰되지 않게 하는 힘을 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을 헤매다 발견한 가로등, 그것이 '밍'에게 '나'의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막막한 길을 너를 위해서, 너와 함께 헤쳐나가 볼 수도 있겠다고. 사람은 다친 고양이를 살렸고 고양이는 그 존재로써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도 기어이 '밍'을 끝까지 살려내는 '나'를 보고 눈물을 쏟으며 이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밍'이 다시 돌아와 '나'를 살렸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내 고양이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죽을 것 같으면 너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서 너를 보호해 줄 다른 좋은 사람을 빨리 찾기를. 고통이 아예 사라질 수 없다면 1인분만 있어도 족하고 세상의 모든 고양이는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는 작가님도 동의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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