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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최선을 다해 가정폭력을 미화하는 끔찍한 작품.
희극이라는데 왜 이렇게 웃음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극을 관람하다 점점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나중에는 이런 물건에 박수를 보내야 하나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고전 발레의 스토리가 하나같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얘기는 다른 포스팅에서도 했지만 그 끝판왕을 보고 나니 정신이 멍할 지경이다. 심지어 원작을 그대로 가져와 20세기 중엽에 안무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한 번 더 뒷목을 잡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문제인 건 이런 물건을 2015년에 수입해 놓고 아무 각색조차 없이 그대로 상연하는 국립발레단 아닐까 싶다.
물론 국립발레단은 이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것이, 공연을 보기도 전에 프로그램북에 실린 작품 소개와 인물 소개, 시놉시스 곳곳에서부터 소위 '빻음'의 기운이 솔솔 풍긴다. 어디 한 번 살펴 보자.
[여주인공 카타리나는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탕발림이 아닌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동으로 그녀를 길들이는 페트루키오와 대립하며 그의 사랑을 깨닫고 말괄량이에서 현숙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폭넓은 감정 변화를 보여 준다.]
이것이 작품 소개 페이지에 나와 있는 메인 커플의 서사이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 그 솔직하고 거침없는 남자의 사랑이라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페트루키오는 1막에서 카타리나의 동생 비앙카에게 구애하는 세 남자의 사주를 받아 카타리나를 유혹하는 역할을 맡는데, 카타리나의 전투적인 면모에 더욱 전투적으로 반응하며 카타리나의 묘한 호감을 산다. 여기까지는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면 인생의 스파이스를 추구하는 배틀 커플이라고 납득해줄 수도 있다. 문제는 혼례를 거부하는 신부를 신랑이 멋대로 들쳐메고 사라진 후 2막부터 시작된다. 2막의 시놉시스를 보자.
[2막 1장: 페트루키오 집으로의 여행
신혼부부는 폭우를 뚫고 신랑 페트루키오의 집으로 향한다. 폭우에 홀딱 젖은 카타리나는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페트루키오의 집에 도착하지만, 페트루키오는 음식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먹지 못하게 한다. 화가 난 카타리나는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거부하고 주방 바닥에서 추위에 떨며 긴 밤을 보낸다.]
이렇게 써 놓으면 페트루키오가 약간 짓궂게 굴고 거기에 카타리나가 까탈을 부리다 처량한 신세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페트루키오는 카타리나를 집으로 데려오는 내내 골탕먹여 기진맥진하게 만든 뒤 자기 집에 있던 건달 무리들에게 카타리나를 겁주게 한다. 진정하고 불 앞에서 몸을 말리려는 카타리나를 저지하고는 난로에 물을 끼얹어 불을 꺼버리더니 이후 음식을 준비시키는데 먹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이 음식의 퀄리티로 핑계를 댄다느니 하는 귀여운 수준이 아니다. 음식을 접시째 집어 저 멀리 내던지고 테이블을 뒤집어 엎는 식의 심한 폭력이다. 카타리나의 입 앞에서 번번이 음식을 빼앗아 던져 버리고는 화를 내는 카타리나를 붙잡아 억지로 키스한다. 화도 내 보고 애원도 해 보지만 카타리나는 결국 음식을 입에도 대어 보지 못하고 페트루키오에게 갖은 멸시와 수난을 당한 끝에 불 꺼진 난로 곁에서 작은 천쪼가리 하나로 배만 겨우 덮은 채 쪼그려 잠이 든다. 실제로 봤을 때 이게 얼마나 불편하냐면 이 1장이 끝난 후 박수가 별로 안 나왔을 정도였다. 이래 놓고 잠시 장면을 바꾸어 카타리나의 동생 비앙카의 연애사정에 대해 잠시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3장은 한층 가관이다.
[2막 3장: 페트루키오의 집
페트루키오가 계속 약을 올리자 카타리나는 더욱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춥고 굶주린 그녀는 결국 페트루키오에게 항복하고 만다. 그러나 차츰 페트루키오가 멋있고 재미있는 남자라는 것을 발견한 카타리나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납치 사건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위키 백과에 따르면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나타내며, '일부 매맞는 아내, 학대받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의 목숨과 안위가 타인의 손에 달려 있는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범죄자에게 복종하고 있다 보니, 이성이 도덕을 배반하는 괴리를 메우기 위해 범죄자의 행위에 납득할 만한 동기를 부여하고 범죄자의 감정 상태에 동조하며 그를 동정하거나 사랑함으로써 스스로의 내면에서 상황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행동양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카타리나는 이 작품에서 납치당한 인질이자 매맞는 아내이다. 천덕꾸러기 딸을 어떻게든 치워 버리고 싶은 부친의 의향에 따라 웬 건달과 강제로 결혼했고, 빠져나갈 새도 없이 납치당해 그의 집까지 끌려 왔다. 젖은 몸에 불도 쬐지 못하게 하고 변변한 잠자리는커녕 식사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이 집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고 계속 반항하다가는 굶어 죽을 판이다.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집주인이자 법적 남편인 페트루키오의 뜻에 따르는 것 뿐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굴복했지만 그 굴욕감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도 보다 보면 매력이 있다고, 일련의 폭력적인 행동들이 자신을 사랑해서 한 일들이었다고.
이런 과정을 통해 카타리나는 굴복하고 망가진다. 자신을 학대한 남자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터무니 없는 일을 요구해도 군말 없이 따른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맹세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삶의 방식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심각하게 폭력적이며, 노골적인 방식으로 학대를 묘사하는데 그것을 미화하기까지 한다. 댄서들의 연기가 제아무리 훌륭해도, 음악이나 무대, 의상 등속이 아무리 빼어나도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원작자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무리 천재적인 극작가였다 해도 그는 500년 전 사람이고 이 작품도 500년은 묵었다. 이 작품이 발레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라온 것은 1969년의 일이다. 이 작품을 보고도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작품이라는 감상이 남는다면 본인의 인식 수준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무대를 만드느라 고생한 이들을 위해 마지못해 박수를 치긴 했지만 박수를 치는 동안에도 내가 치는 박수의 의의에 대해 고민하고 회의해야 했다.
작품 자체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어떠한 요소에 대해서든 긍정적인 얘기는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으므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겠다. 이 상태로는 두 번 다시 무대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작품이며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는 얘기만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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