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포탈 1 (Portal 1)
점수 ★★★★★
한줄평 이 게임 안 해본 사람 없어야 한다.
구매 https://store.steampowered.com/app/400/Portal/
게임 스토리 전반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일할 때 사놓기만 하고 몇 년간 묵혀 두었던 포탈을 하게 되었다.
사실 지난 여름에 한 번 해봤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튜토리얼에서 막히는 바람에 빡종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몇 달 후 다시 해 보니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스무스하게 진행되어 가열차게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
기세를 몰아 포탈 2까지 플레이를 마친 지도 오래지만 일단은 1편 얘기부터.
일단 이 게임은 플레이 방식이 매우 참신하다.
3D 1인칭 게임이자 퍼즐 요소가 있는 탈출 게임인데, 게임의 컨셉이 이 '3D'의 속성을 아주 잘 살려준 덕에 공간감이 풍성하고 퍼즐을 푸는 과정이 액션 게임적인 면을 가지기도 한다. 난이도에 따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 스테이지 설계에 따라 유저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퍼즐을 푸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타이밍에 맞춰 액션을 수행해야 하는 긴장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게임을 하다 보면 포탈이 신선한 컨셉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조합해 재미있게 만들지를 고민해 잘 빚어낸 작품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으며, 이런 세심한 설계는 포탈을 단순한 탈출 퍼즐 게임이 아닌 흥미롭고 활기 넘치는 어드벤처로 만듦으로써 게임의 작품성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포탈'은 A지점과 B지점을 물리적으로 연결해 주는 구멍이다. 이 포탈은 초반 스테이지의 경우 특정 지점에 고정되어 있지만 '포탈 건'이라는 아이템을 얻은 후로는 유저가 직접 포탈을 쏘아 만들 수 있다. 포탈 건의 사용에는 몇 가지 제약사항이 있는데 금속, 유리 등 특정 재질의 표면에는 포탈을 설치할 수 없고 어떤 형태든 중간에 장애물이 있다면 그 너머로는 포탈을 쏘아 보낼 수 없다. 그 외에는 거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에 몇 번이나 포탈을 열어도 상관 없기 때문에 유저는 퍼즐을 풀기 위해 여기 저기에 포탈을 쏘고 왔다갔다 하면서 마음껏 스테이지를 누빌 수 있다.
거울이 없지만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등짝... 등짝을 보자...!
저 앞에 출구가 있고 거기까지 가는 길은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 장애물, 닫힌 문 등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뚫고 지나가야 할지를 3차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기획자가 설계한 정석적인 해법이 있을 테고 거의 대부분은 그 해법을 유저 또한 자연스럽게 찾아내서 깨지만, 핵이나 버그 없이도 참신한 해법을 만들어낼 가능성 또한 존재하며 해법과도 아예 관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딴짓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개발진은 이에 관련된 도전과제도 제공함으로써 딴짓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까지 한다.
기물 파손을 권장하는 게임
이러한 자유도를 통해 포탈의 스테이지는 유저에게 도전해야 할 실험장이자 놀이터가 되고, 유저는 고민과 놀이를 함께 하며 스테이지를 차근차근 깨 나가는 동안 성취감과 재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게임의 액션에 자유도를 주는 경우 높은 확률로 따라오는 리스크는 '불친절함'인데, 포탈은 기믹의 추가 방식과 스테이지 설계 밸런싱을 통해 친절한 게임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게임은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안내자(이름은 '글라도스' 이다. 게임 막판에 가야 이름이 공개되는데 이름 자체는 스포일러가 아니다)의 인도 하에 전개되지만 거기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이런 목소리에게 설명을 맡겨버릴 경우 일단 재미가 없거니와 제대로 듣지 않으면 게임을 익힐 수도 없고, 다시듣기를 적절히 제공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불친절한 시스템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글라도스는 안내자 포지션에 있음에도 튜토리얼 전달자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때는 있지만 사용법 따위는 알려주지 않으며, 오히려 그에 대해 짓궂은 장난이나 비꼬기로 플레이어의 허를 찌름으로써 뜻밖의 재미 요소를 줄 뿐이다.
포탈이 튜토리얼을 전달하는 방식은 '순차적으로 제시하기'이다. 이것은 포탈에 등장하는 각 요소들의 기능과 작동 방식이 단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별도의 설명 없이도 일단 한 번 만져 보거나 부딪쳐 보면 쓰임과 작동 원리를 알 수 있으니 굳이 해당 요소들에 대해 설명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개별 요소들은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하나씩 새로이 제시되므로 유저가 한 번에 받아들여야 할 정보량도 너무 많지 않다. 예를 들면 첫 스테이지에서는 저 앞에 보이는 출구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되고, 그 다음에는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고, 그 다음에는 포탈건을 쥐어주고 '한 번 쏴 봐!' 하는 식이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은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에 따라 스테이지의 복잡도와 난이도는 완만하게 증가한다. 유저는 게임을 학습하는 데 따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제시된 요소들의 조합, 순서, 사용 타이밍만 고민하면 된다.
탈출 게임에서는 단서를 개연성 있게 제시하고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 부분이 제대로 설계되어 있지 않은 경우 유저는 갑작스러운 난이도 상승으로 인해 벽에 부딪쳐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포탈은 공략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채 충분히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스테이지를 무사히 클리어할 수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포탈이 탈출 게임이면서 액션 게임이기도 하다고 서술했는데, 사실 포탈을 이야기할 때는 스토리와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맞다. 이 게임은 모든 것을 갖춘 토탈 패키지다.
사실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은 2편에 가야 나오고, 1편의 스토리는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관을 파편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더 강하다. 주인공은 자신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로 '애퍼처 사이언스'의 실험실 안에서 깨어나고,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실험실을 차례차례 헤쳐 나간다. 주인공에게는 대사가 주어지지 않으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이 유일하게 만나는 지적 생명체는 '글라도스의 목소리' 뿐이다. 실체도 확인할 수 없지만 주인공의 모습을 관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주인공에게 주어진 유일한 인터랙션이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이 목소리에게 의존하게 되고, 약간의 애착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플레이어가 의존하는, 친절하고 조금은 짓궂은 면도 있는 글라도스의 목소리는 '의도적 말실수'를 통해 이 실험이 그리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실험을 진행하던 중 '실수로 열려 있는' 실험실의 벽 너머에서 플레이어는 말끔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는 실험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시설을 보게 되고 이 공간을 거쳐 간 다른 사람들이 남긴 처절한 낙서를 보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스토리는 바로 거기서부터 전개되기 시작한다.
불길한 암시들이 점점 늘어나고 테스트 또한 그 불길한 끝을 향해 진행되어 간다. 거의 노골적으로 '이제 죽지 그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는 마지막 테스트를 겨우 끝내고 글라도스의 축하와 함께 주인공이 탄 이동식 발판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 앞에 펼쳐진 것은 확실한 죽음을 향해 활짝 열린 문이다. 발판이 죽음의 구렁텅이를 향해 전진하는 동안 그곳을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면서 긴장은 고조되고 등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겨우 탈출하면 그때부터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용서해 주겠다고 말하는 글라도스의 감언이설을 뿌리치며 어떻게든 시설을 벗어나려는 탈주극으로 제2의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주인공이 나아가다 방향을 고민할 시점마다 벽 어딘가에 탈출 방향을 알려주는 붉은색의 거친 낙서가 그려져 있는데, 이 낙서를 따라가면서 가장 불안한 부분은 이걸 따라가도 어디로 나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함정일 수도 있고 이 또한 글라도스의 설계일지도 모른다. 그 불안감 때문에 부디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글라도스의 목소리에 굴복하고 싶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미 확인했듯 테스트가 끝난 피험체에게 예정되어 있는 것은 죽음이었고, 죽음을 거부한 순간 주인공은 글라도스와는 반대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장애물에 가로막히고 실수해서 죽어 가며 수십 개의 문과 계단과 복도를 통과해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글라도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동안 둘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주인공에게 탈출 방향을 알려주는 메시지를 남긴 이는 이 시설의 지배권을 가진 글라도스를 따돌리고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딱 한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바로 글라도스를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극도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마침내 우리는 글라도스를 만난다.
게다가 게임은 친절하게도 그 긴장을 유지하라고 보스 스테이지에서는 시간 제한을 준다. 지금까지는 조작 미스로 죽는 경우를 제외하면 도전 횟수나 시간의 제한은 없어서 느긋한 마음으로 퍼즐을 풀 수 있었지만 보스 스테이지에서는 그런 사치가 주어지지 않는다. 엄청난 초조함 속에서 어떻게든 내가 죽지 않고 글라도스를 죽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물론 결국 몇 번 죽은 뒤에 깨긴 했지만 단계별 공략 자체는 어렵지 않고, 한 번 공략을 터득한 후에는 조작과 순발력의 문제이므로 꼭 이 엄청난 긴장감을 느껴 가면서 스스로 풀어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겨우겨우 글라도스를 죽이고 시설이 파괴된 뒤, 유저는 만세를 외치며 마음 편히 감상하려던 엔딩 크레딧에서 또 한 번의 충격에 휩싸인다.
꼭 플레이하자. 그리고 게임을 마친 뒤 이 곡을 감상하도록 하자.
그리고 포탈 시리즈는 세일 때마다 90% 할인하니 세일할 때 1, 2편을 동시에 사 두자. 1편이 종반부로 다가갈수록 빨리 2편을 하고 싶은 욕망을 참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1편만 샀다가는 크게 후회할 것이다.